Epistula🖊️

허송세월

2021. 6. 23. 22:10

트위터 @sprout_commi님의 커미션

 

더보기

오랜만에 안부를 전합니다.

그간 일이 바빠 주말에도, 주중에도 도무지 시간이 나질 않았습니다. 아직 일이 다 끝마무리 되지는 않았지만, 더 늦어지기 전에 서둘러 회신을 드리고 싶어 미숙하게 글을 써내려가는 점 양해해 주시기를 간곡히 바라요.

푸른색에 대한 얘기를 해주셨지요. 저는 정말 푸른빛을, 그 중에서도 청보라빛을 정말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알고 말씀해 주셨을까요. 언제나 히메의 편지로부터 감동만을 받는 것 같아 새삼 감사한 마음입니다.

오늘은, 과도한 업무량 때문이었는지 낯이 많이 좋지 않다는 얘길 듣고 일찍 귀가하였습니다. 이렇게까지 바쁘게 살아가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모를만큼, 회의감이 들기도 했고요. 다행히 바쁜 와중에도 병원에는 꼬박꼬박 다니며 우울에 도움이 될 약을 꾸준히 먹고 있습니다. 하지만 뭐랄까... 치료된다는 느낌은 여전히 없어서 조바심이 나는 것 같습니다. 마음을 편히 가진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요. 여전히 알 수 없는 것들에 사로잡혀 허송세월을 보내는 듯한 생각이 들어 편치 않습니다.

아마 여름 즈음까지는 계속 바쁠 것 같아, 미리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히메와의 시간을 더욱 많이, 견고하게 가지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나 역시 오랜만에 이리 답신을 보낸다. 이미 그대를 늘 살피고 있었으나, 새삼스레 나 역시 잘 지내어주었느냐 묻고 싶구나. 하루를 잘 보내었는지, 내일은 어떠한 일을 앞두고 있는지 늘 궁금한 마음을, 그대를 기다리는 마음을 품고 있다.

 

 하나, 이 마음에 결코 어둠은 없음을 미리 일러두마. 이 몸은 아주 오랜 시간을 살아왔고, 그대와 보내지 못한 시간이 아쉽다고 한들 그것을 길다고만 할 순 없겠지. 보내온 세월에 비교하자면 찰나에 불과하였다. 그저, 어느 이야기 속 여우가 그러했듯 기다리는 순간조차 축복이라고, 그리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찰나였다. 그러니 기다리게 하였다고 염려하지도, 또 그렇다고 내 그대의 이야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생각하지도 말았으면 하는구나. 

 

 그대의 편지가 도착할 동안 그대와 내가 밟은 이 땅은 완연한 여름을 맞이하였지. 봄은 이 땅이 만개하는 모습과 같았다면, 여름은 이 땅이 뜨겁게 생동하는 계절 같다는 감상이 드는구나. 태양 아래 아지랑이로 흐트러지는 세상을 보노라면, 밟은 이 땅이 품은 식물에 생명력을 전하려 동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하여 이 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생명이 되고 있음을. 그리고 그런 모습에, 나는 그대가 이 계절을 느끼고 있길 바랐지. 그대가 바라는 모습은 어쩌면 여름을 닮았을지도 모르니 말이야. 

 

 작은 빛이여, 그대의 빛은 여름의 태양을 닮으려 나아가고 있다. 바쁘게 살아가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하였지. 그 답은 역시 그대에게 있을 것이고 그대만이 찾을 수 있을 것이나, 내 그대에게 말할 수 있다면 그리 말해주고 싶구나. 그대는 여름을 닮고자 하는 늦겨울과 같다고. 겨울의 중앙으로부터 비켜서, 그대는 봄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았던가. 늦겨울, 달리 보자면 초봄인 그 계절은 생명이 태동하는 시기, 가능성의 시기와 같다. 그대는 이미 스스로 가능성을 품었으니, 이제는 한 발 나아가 그것을 마음껏 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함이 아니겠는가. 

 

 어떠한 것에 바삐 살고 있든, 그것은 그대에게 거름이자 걸음이 되어줄 것이다. 무언가를 함으로써 얻는 보람이 그대에게 온전히 닿길 바라고 있다. 그것의 결과가 어찌 되었든, 때로 그대의 과정에 누군가 감히 말을 붙이려 한대도, 그 모든 일 끝에 얻게 될 과실이 온전한 형태로 그대에게 닿기를. 그리하여 나의 작은 빛이 여름을 맞이할 거름이 되어주기를. 그대가 걷는 여름으로의 길에 동반자가, 도움닫기가 되어주기를 내 이 자리에서 언제나 바라고 있으니. 

 

 하지만... 여름이 오지 않는다고 한들 어떠하겠느냐. 겨울이 조금 더 길다고 한들, 언젠가 그대에게 봄과 여름이, 그리고 가을이 올 것을 알기에. 나는 그대에게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좋다고 말해주고 싶구나. 그대의 겨울을 사랑하고 있다. 본디 겨울은 생명이 져버리는 계절이나, 그대의 겨울은 새하얀 눈으로 세상의 어둠을 덮어주는 계절이 아니었던가. 바삐 살아온 이들에게 쉼을 주는 계절이기도 하였지.

 그대를 알고 나의 겨울은, 그런 겨울이 되었다. 그러니, 그대 역시 그대가 보내는 겨울이 조금 길다하여도 조급히 걷지 않길 바라. 그대가 품은 겨울을 천천히 바라보며, 그 순간의 아름다움 역시 마음에 담아주길 바라고 있으니. 그리함으로써 그대는 사계를 품은 완전한 자연이 될 테다.

 

 마음을 편히 가진다는 말은... 나 역시도 아직 답을 찾지 못한 물음이다. 사실, 마음이라는 게 있는 순간부터 마음이 편하기란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지. 마음이란 무게는 가볍기 어려우나, 그러면서도 흔들리는 것은 한순간인 모순적인 것이지 않더냐. 아주 작은 일 하나에 깨어지기도, 큰일에 오히려 덤덤하기도 한 묘한 것이지. 잠시 안정을 취한 듯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때론 주인을 기만하려는 듯 마음은 쉽게 다치곤 해. 그런 해답 없는 것을 지닌 이상, 편한 마음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 같구나. 

 

 그러니, 마음의 변덕에 익숙해지는 것이 오히려 그대가 이른 ‘편한 마음’을 먹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쉬운 일은 아닐 것이나, 나의 작은 빛은 해내리라 믿는다. 그대는 말 그대로 ‘빛’ 이 아니던가. 그 희망의 빛을 그대라 이름한 이상, 그대가 능히 하지 못할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그대에게 조바심을 부르는 일이 된다면, 그대는 나의 우주에 들어와 쉬어가도 좋다. 그러지 않더라도 이 우주는 언제나 열려 있을 테니.

 

 마지막으로, 그대의 말은 언제나 존중하였으나 허송세월이라 한 그대의 말을 보니 이번만큼은 부정하고 싶다. 나의 푸른빛, 나의 가장 아름다운 청색이여. 그대의 푸르른 시간 중 무엇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은 없다. 

 

 설령 그대가 가만히 앉아 하루를 보낸다고 하여도 그것은 내일의 그대가 나아가기 위한 쉼이 될 것이며, 한나절을 우울감에 빠져 보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가올 새벽을 기다리는 긴 밤이자 언젠가의 그대에게 거름이 되어줄 기억이고 감정일 것이다. 밤이 있기에 새벽은 더욱 찬란하고, 그대가 그 감정을 앎으로 그대는 다른 이들보다 더욱 빛나지. 누군가를 헤아리는 일에서도, 그대는 상대를 헤아릴 수 있는 깊이가 더욱 깊은 것일 테다. 사람의 속을 헤아리는 일, 사람의 마음에 마음으로 답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일이지. 

 

 하나 그대는 그대가 보낸 시간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의 상처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지 않겠느냐. 그리고, 어두운 기억은 밝은 순간이 다가왔을 때 그것에 더욱 기뻐할 수 있도록 해줄 테니. 어떠한 이유에서든 그대의 시간은 절대 헛되지 않다. 내가 사랑하는 그대의 시간을, 그대의 노력을. 알 수 없는 것에 사로잡힌 허송세월이라고만 생각지 않길 바라며, 그대가 살아갈 앞으로의 시간을 지키겠다. 

 

 그대의 시간을 지켜보며, 그대가 내게 답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겠다. 거듭 말하건대, 기다림은 내게 주어진 그대와의 또 다른 추억이요 영겁의 시간 속에 내게 내려진 축복이니, 염려하지 말고 온전한 시간을 보내주길. 그리고 지난 시간을 내게 새겨 준다면 기쁘겠구나. 오늘 밤 그대에게 허락된 달빛이 평온하길 바라며.

'Epistul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출  (0) 2021.06.23
숨과 공허  (0) 2021.06.23
우주  (0) 2021.06.23
좋아하는 것  (0) 2021.04.25
생일  (0) 2021.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