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tula🖊️
희망
2021. 4. 1. 23:50트위터 @sprout_commi님의 커미션
안녕하세요 히메.
그간 안녕히 지내셨길 바라요.
이 봄이 지나도 제 곁에 머문다는 말은 생각보다 더 크고 벅찬 감정으로 다가왔습니다. 버거운 것은 아니었어요. 그저, 긍정적인 감정을 이렇게 가득 느낄 줄 몰랐기에, 그 것들을 수용할 수 있는 그릇이 넘쳤다는 것이 맞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그 감정들을 계속 떠올리고 있노라면 어느 샌가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이는 것이 꼭, 처음 사랑고백을 받고 울어버리는 소녀같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스스로를 소녀에 비하기에는 너무 자랐을까요? 여전히 풋풋함을 마음 속에 품고 있으니, 소녀의 태를 벗어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답신을 꼭 보내고 싶었는데, 일이 바빠 하루 이틀 미루다보니 지금이 되었습니다. 인생이란 어쩜 이리도 잔혹한지, 분명 잘하고 있다 믿고 있었는데 '어쩐지 의욕이 없어보인다'라는 한 마디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요즘은 그냥, 저를 응원해 주시는 분들을 제 손으로 내친 것 같은, 일종의 죄책감마저 몰려와요. 잘 하고 있다는 확신이 없어지니 두 발로 땅을 디디고 서있는 것조차 힘이 들고요.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그런…. 저의 이 슬픔은 언제쯤 나아질까요. 저는 얼마나의 시간을 보내야만 이 슬픔에 담담해질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점점 물들어오는 어둠을 감당하기가 어려워, 병원도 옮겨보고 있습니다. 으레 하는 초진이라는 것은 꽤 번거롭습니다. 제 모든 이야기를 하나씩 다시 꺼내 보여줘야 하거든요. 왜 힘이 드는지, 왜 슬픈지, 왜 빛을 잃고 있는지…. 괴로운 일을 곱씹으며 제 입으로 다시 꺼내는 것 만큼 괴로운 일도 없습니다. 모쪼록 이 과정들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마음이 가는대로 쓰다보니 이번 편지는 굉장히 어둡네요…. 철야를 반복하고 있기에 딱히 즐거운 일이 없어서 더 그럴지도 모릅니다…. 이 편지의 내용이 부디, 히메의 마음을 무겁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바보같은 바람일지도 모르겠으나, 제 마음의 파도가 잠잠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해요. 제게 햇빛만큼 따사로운 희망을 주세요.
나의 작은 빛, 나의 어여쁜 소녀여.
그저 봄 한 자락을 약속하였을 뿐인데 이리 고운 마음을 돌려주니, 봄이 지난다 하여도 나의 계절은 여전한 봄일 성싶다. 그대의 마음이 내겐 그 어느 꽃보다 곱고 어여쁜 꽃이고, 따뜻한 바람이니. 하여 나 역시 그대에게 비를 멎게 할 봄이 되고픈 바람이 있다. 그러니 언제든, 그대는 편히 이 몸에 파도를 적시어도 좋다.
그대는 알고 있는가, 때로 소녀는 세상에서 규정한 ‘어른’이란 존재보다 강하다는 것을. 소녀에겐, 어른은 결코 가질 수 없는 순수한 빛이 있기 때문이지. 그대 역시 그러하다. 그대의 마음을 투명하게 들여다보며 그것에 휩쓸리고 잠기는 그대는, 가히 순수한 사람이라 할 수 있겠지. 인간에게 주어진 특별한 선물인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그대는 어쩌면 남들보다 더 많은 축복을 받은 이인지도 모르겠구나. 자신이 슬픈지도, 외로운지도 모르고 묵묵히 길을 걷는 이들의 삶은 그대의 삶보다 탁한 삶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그들은 저에게 다가올, 다가왔던 작은 행복도 쉬이 놓쳐버리니 말이다.
그러니 소녀여, 그대의 여리고 순수한 마음을 부정하지 않아도 좋다. 자라지 않았다 하여 겁내지 않아도 좋다. 그대가 영원히 소녀로 남는다면 나 역시 그대의 멈춘 시간을 소중히 할 것이고, 그대가 자라기를 원한다면 그대의 길이 순탄하길 기원할 것이니. 이 몸은, 내 아름다운 이의 모든 순간과 감정을 아끼고 있으니.
그런 그대에게, 내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구나. 작은 빛이여, 그대는 언제나 그대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내고 있다. 잘하고 있다. 그대의 모든 걸음은 그대의 삶을, 그대가 가진 빛을 더욱 밝히고 있다. 주저앉은 그 잠시 또한 그대의 걸음이다. 그것은 다시 나아가기 위해 숨을 고르는 것과 같다. 주저앉음을 두려워 말라. 슬픔에 휩쓸리기를 겁내지 말라. 그대의 좌절과 불안 역시 그대의 아름다운 감정이다.
허나 그것이 그대를 아프게 하여 쏟아내길 바란다면, 지금처럼 내게 찾아오거라. 언제나, 그대의 슬픔을 감싸 안고 있다. 다시 걸음을 내딛길 바란다면 내 그대의 발이 되고, 그대가 짚을 커다란 나무가 되어줄 테니, 그대는 그대가 바라는 것을 망설이지 말라.
그대는 그대의 삶을 밝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 않았던가. 내게 들려주는 모든 말이, 내겐 그대가 그대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살아가는 것이 아닌, 살아내고 있는 그대를 감히 비하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또한, 살아가는 것이 아닌 살아내는 삶을 사는 그대는, 그대의 삶과 운명을 그대의 손으로 바꾸어 내는 위대한 빛과 같다. 새삼, 나의 소녀는 강인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강인한 나의 빛이여, 그간 그대에게 주어진 어둠이 더해졌구나. 태양이 뜬 곳엔 반드시 그림자가 진다고 하지. 그대에게 어둠이 더욱 드리운 것은, 그만큼 그대가 품은 빛이 더욱 거대해졌음과 같다고 생각하고 싶구나. 언젠가는, 그대는 작은 빛을 넘어 새벽을 환히 밝히는 아침이 될 테지. 새까맣던 밤을 그대의 색으로 물들이리라고, 이 몸은 믿고 있다.
동이 터 오기 전의 새벽은 그 어느 때보다 어두운 법이다. 잠시 그대에게 괴로움이 닥쳤으나, 이는 아침을 밝히기 위한 준비일 것이다. 언제가 되었든, 그대에게 아침은 반드시 밝아올 것이다. 그대가 밝혀낼 것이다. 그대의 삶에 찬란한 아침을 밝혀올 것이다. 그대는 그대의 삶의 주인이고, 선장이다. 파도를 이겨내고 나아갈 그대의 삶을, 나는 오늘도 지켜보고 있다.
희망... 그 말은 분명, 바랄 희(希)에 바랄 망(望) 자를 쓰는 것이었지. 그러나 나의 빛나는 이에게는 어쩐지, 즐길 희(嬉)를 선물하고 싶구나. 나의 희망은 이것이다. 그대가 내게, 오늘 하루가 즐거웠노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길. 즐거움을 안다는 것은 그만큼 삶의 무게를 가벼이 감당하고 있다는 뜻이지.
내 그대의 운명을 함께 짊어지기로 약속하였으니, 당연하게도 나의 희망은 그대의 즐거움이다. 그리고 나의 희망은 곧 그대를 향한 믿음과 축복이다. 따사로움을 바란 그대여, 그대의 앞날에 봄바람 스민 즐거움이 가득하길, 나의 희망이 그대의 희망이 되길, 이렇게 희망한다.
하늘의 울음이 오늘따라 유난히 길구나. 그간 바깥 공기가 따뜻하여 그대의 하루가 좀 더 평안하리라 믿고 안심하였는데, 햇빛이 들지 않은 오늘 그대가 슬픔에 잠기어 있을까 걱정이 들어. 풍경은 때때로 사람의 감정을 뒤흔들곤 하니. 그리고 여리고 투명한 그대의 마음은 어쩌면, 그것의 영향을 더욱 크게 받을지도 모르지.
허나 그대에게 우산을 권하기는 아쉽구나. 혹자는 그대의 우산이 되어주겠노라고, 그런 위로를 건넬지도 모르지. 나 역시 그대가 빗방울을 맞길 아파한다면, 비에 숨이 멎을 것 같노라 말한다면 기꺼이 그대의 우산이 되고 그대 앞에 드리운 구름을 가리어 줄 것이다. 그러나 그대만 괜찮다면... 난 이 빗 속에 그대의 슬픔을 털어냈으면 해. 하늘이 우는 날, 그대도 함께 울고 마음을 비워낼 수 있다면 그 또한 축복이 아닐까.
눈물을 보이는 것은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야. 슬픔을 토해내는 이 과정은, 기뻐 웃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고, 인간에겐 필요한 행동이지. 이것을 오히려 참으려 애쓴다면 고여 썩은 물은 마음에 큰 병을 일으킬 테다. 그러니 작은 빛이여, 어둠 속에 울먹이기 바란다면 그리하라. 그대가 잠시 빛을 내려놓겠다면, 그대의 빛을 내가 지키고 있겠다. 그대의 곁을 비추고 있겠다. 그대가 다시 이 빛을 쥐겠다 말하는 날 건네주겠다. 그대의 모든 행동과 감정을, 그대의 마음 한 자락까지 전부, 이 봄이 지나도록 살필 것이다.
'Epistul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아하는 것 (0) | 2021.04.25 |
---|---|
생일 (0) | 2021.04.25 |
장미 (0) | 2021.04.01 |
그대의 봄을 기다리며. (0) | 2021.04.01 |
겨울 (0) | 2020.1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