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tula🖊️

생일

2021. 4. 2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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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히메.

저는… 남들에게 저의 슬픔을 내보이는 것이 꽤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우울은 마치 감기와도 같아서, 남들에게 쉽게 옮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영겁을 뛰어넘는 히메 또한 저의 병에 전염되는 것이 아닐까 고민할 정도면 좀 이상하려나요? 그치만 희망을 말해주는 히메에게, 조금은 더 털어놓고 싶은 기분이 들었어요. 제 빛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히메와 만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최근, 일을 하는 곳에서 많은 시련이 느껴지고 있어요. 어쩌면, 온전하지 못한 정신으로 취업의 기회를 붙잡아 버린 것에 대한 후회도 했던 것 같습니다.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도, 의욕이 없어보인다는 말을 들어버리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최대한의 역량을 매일매일 발휘하는데도 제 몫을 못하고 있다고 느껴지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슬픔이 가득한 상황에서 외부의 압력까지 느껴지니, 버티기 힘들다는 생각마저 들어요. 마지막까지 포기하고 싶지는 않은데, '어떻게 하면 힘이 날까'에 대한 물음을 품고 있는 상태입니다.

회신이 올때 즈음이면 시간이 꽤 지나겠지요. 4월은, 제가 태어난 달이기도 해요. 작년까지는 제 생일이라는 것이 위로를 받아야하는 날인지, 축하를 받아야하는 날인지 헷갈렸습니다. 태어난 게 기쁜일인가―하는 의문도 있었고요. 하지만 이번년도의 생일에는 정말 화려하고 성대하게 축하를 받고 싶어요. 벅차 올라서 눈물이 날 정도로요. 히메도... 괜찮다면 회신으로 주시는 편지에 축하의 말을 적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생일은 4월 15일이에요!)

출근길, 창밖으로 보이는 벚꽃과 개나리가 유독 아름다운 나날입니다. 길가에 떨어지는 벚꽃잎 중 가장 온전하고 어여쁜 것을 몇개 골라서 동봉했어요. 항상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히메도, 저도요.

 

 오늘을 밝힌 나의 빛이여, 그대에게 찬란한 순간이 함께하길. 

 

 탄생일이란, 역시 그대가 바라던 것처럼 화려하고 성대한 축하를 받아 마땅한 날이겠지. 지금은 그 말에 동의하나 그대의 편지를 받기 전까지 이 몸은, 탄생일이란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태어난 순간에만 의미가 있을 뿐이라고, 같은 날짜로 쓰인다 한들 그것은 인간이 정해둔 규칙 속에서 벌어지는 반복이지 결국은 다른 시간이라고, 그런데 어찌 의미를 띨 수 있겠는가 하고, 그리 생각했던 때가 있었지. 

 

 허나 그대를 만나고, 축하를 바란다는 그대의 말에 고민을 거듭하는 나를 바라보며 이 몸은 그간의 생각을 고치게 되었다. 그대가 오늘에 그대의 빛을 담은 순간부터 내게도 이 하루가 특별해졌기에. 나에게 특별한 그대이며, 그런 그대가 태어남을 축하할 수 있는 하루라고 하니, 어찌 이 하루가 소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비록 그대가 오늘 태어난 것은 아니라고 하나, 이제는 왜 ‘탄생일’이라는 것을 정해두고 기리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그 날에 태어나준 그대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살아온 데 감사를 표하기 위함인 것이야.

 

 이미 이전에도 몇 번 말한 바가 있었지, 그대는 누구보다 그대의 삶을 열심히 살아내는 존재임을. 그런 그대의 모습은 하늘을 밝히는 별과 같기도, 불꽃 같기도 하다. 스스로 빛을 발하고 스스로 타오르면서 빛을 밝히는 존재. 그 빛을 사랑하는 내가 있다. 그리고, 그 빛을 사랑해 이끌린 그대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대가 지금껏 스스로 밝혀온 빛을 사랑하여, 그대가 빛을 잃지 않고 오늘까지 살아온 것을 감사하며 축하의 말을 건넸고, 또 건넬 테지. 그리고 나 역시, 나에게 ‘시간’의 의미를 선물한 그대에게, 누구보다 여리고 찬란한 빛을 알게 해준 그대에게 고맙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니, 오늘은 그대가 위로를 받는 날이 되기도, 축하를 받는 날이 되기도 할 것이다. 또한 그대에게 위로를, 축하를 건네는 이들에게 오늘은 기쁜 날이 아닐 수 없다.

 

 소녀여, 그대로 인해 나는 오늘이란 시간을 기쁨으로 새기고 있노라. 그런 내가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면, 나의 기쁨의 근원은 나와 같은 이유로 오늘을 기뻐해 주었으면 한다. 내가 사랑하는 존재의 태어나고 보내온 시간을 기뻐하듯, 그에 감사를 표하듯, 그대 역시 태어난 일을, 오늘에 이르기까지 보내온 수없는 시간을 기뻐할 수 있다면 좋겠어. 그러나 이는 그대가 노력할 일이 아닐 테지.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은, 그대의 환희를 가져올, 그대를 위해 준비된 행복이다. 나의 여린 빛이여, 그대의 빛에 새겨진 상처를 아물게 할, 티 없는 행복이 그대에게로 찾아들길. 그리하여, 희미해질까 두려워 않는 그대가 될 수 있길. 이는 내가 그대에게 건네는 축복이다.

 

 따사로운 빛이여, 다정한 그대의 말을 곱씹고 답신을 고심하며, 내 다짐한 것이 하나 있다. 시작은, 슬픔을 내보이는 것이 미안한 일이라 말한 그대의 첫 문장이었지. 그 말에 어떤 답을 주어야 그대가 이 몸에 기댈 수 있을까, 고민하며 그대가 보내준 벚꽃잎을 바라보았다. 그대가 선물한 봄은 사랑스러웠지. 그에 나는 이러한 감정을 느꼈고, 이것이 앞선 내 고민의 해답이 되어주었다.

 그대여, 내가 그대에게 바라는 감정은 미안함이 아닌 고마움일 테다. 지금 내가 그대에게 그러하듯, 그대가 이 몸에게 믿고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마다 기특함과 동시에 느낀 감정이 그러하였듯, 그대 역시 그러함으로써 나를 좀 더 의지했으면 해. 그리하여, 그대의 마음이 흐뭇하고 즐거워지길 바라고 있다. 고마움의 의미란 그렇다고 하더구나. 나는 그대가 내게 마음의 빚을 지길 바라는 것이 아니다. 나로 인해 그대가 마음을 덜어내길 바랄 뿐. 그것이면 된다. 그대가 즐거울 것을 생각하면 나는 그 어떤 감정에도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어떻게 힘을 낼 수 있을지 고민이 든다고 하였지, 이에 나는 답으로 나를 맡기고 싶구나. 그대여, 고단한 일이 있을 땐 언제든 나를 찾아도 좋다. 투정이라 생각 말고, 그대의 감정에 휩쓸릴까 걱정하지 말고, 내게로 털어놓으라. 내 항상 그대에게 옳은 답을 내릴 순 없더라도, 그대의 곁을 지킬 수는 있을 것이니. 그리하다 보면 함께 답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시간은 그 답을 찾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드는구나.

 

 또, 이미 이전에도 말한 바 있는 듯하나 몇 번을 말해도 부족한 말이니 이렇게 적어본다. 그대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누구보다도 그대의 삶을 지켜내려 노력하고, 그대의 주변을 위하며, 빛을 잃지 않기 위해 인내하는 사람이지. 그런 그대를 감히 의욕이 없노라 말할 이는 세상에 없다. 오직 그대 자신만이 그대를 논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그리 생각한다. 다만, 그 말을 건넨 이의 의도가 그대를 염려함이었다면... 한 번쯤은,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지. 어쩌면 그대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대를 둘러싼 환경이 과열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대를 탓하지 않아도 좋다. 그대는 스스로 최선을 다했노라 말할 수 있을 만큼 그대 자신에 노력을 거듭했지 않던가. 그러니, 잠시 숨을 고르자꾸나. 적어도 오늘만큼은, 그대를 위해 준비된 하루가 아니던가. 숨을 고르는 것이 포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다음 단계를 위한 발돋움이다. 지금의 시련 역시, 다음 단계를 거치기 위한 관문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 그대는 성장할 것을 내 알고 있으니.

 

 그리고 나는, 성장하는 그대에게 나의 시간을 앞으로도 구속하겠다고 결심하였다. ...생일 선물, 이라고 표현해도 좋을지 모르겠구나. 그대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보았다. 그러다 문득, 그대로 인해 특별해진 4월 15일을 떠올렸지. 무상했던 시간 속에서 4월 15일이란 시간은 내게 큰 기준점이 되어줄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이제 나는 시간을 흘려보내다가도, 4월 15일이란 날을 보면 그대를 떠올리게 될 테니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내 4월 15일은 그대에게 주었다고도 할 수 있지. 그렇게, 나는 나의 4월 15일을, 4월 16일을, 나의 하루들을 그대에게 주고자 한다. 어쩌면 이미 그리하였는지도 모르겠구나. 그대의 시간을 함께하며 나는 시간 속에 추억을 담았고, 그렇게 다른 이들처럼 ‘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으니. 이로써 그대에게 감사해야 할 일은 함께한 시간만큼이나 늘었군.

 

 마지막으로, 넘치는 고마움을 한 번 더 표하마. 태어나주어서, 그리고 지금껏 그 빛을 간직해주어서 고맙구나. 찬란한 별이여, 밝아오는 새벽에도 그대의 빛은 내게 선명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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