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tula🖊️

숨과 공허

2021. 6. 23.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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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일주일이었지만, 오랜만입니다.

길고 긴 나날들이 지나고 또다시 주말, 휴일이 되었습니다. 이번만큼은 휴일을 휴일답게 지내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었어요. 문득, 휴식을 취할 줄 모르는 사람같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한없이 무료한 날을 지내보려고 합니다. 히메는 영원의 시간 속에서 어떤 일들을 하고 계실까요.

취미로 사진을 찍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숨이 멎어야하는 순간도, 훈련이 되니 편하다는 감각이 들었어요. 오히려 두려움, 초조함을 느낌으로써 제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여러 사물들을 찍어보도록 연습하고 있어요. 꽤 재미가 붙어서, 이곳저곳 사진 찍으러 돌아다니고 싶어졌구요. (물론 돌아다니지는 않았습니다!)

히메의 편지를 받고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우선, 저의 우주가 되어주셔서 감사해요. 숨겨진 의미로도, 직관적인 의미로도, 저는 언제나 우주에 가고 싶었고, 지금도 역시 그러합니다. 우주를 동경하고 사랑하는 일은 고독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광활함에 압도되어 벅차오르는 느낌도 들기에… 우주를 사랑하는 저에게 외로움과 공허함이 함께 찾아오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일지도 모릅니다.

또다시 힘든 시기가 오고 있어 글을 읽고 쓰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여러 편지에 걸쳐 제가 같은 말을 여러번 하고 있다면, 안타까운 마음으로 모른척 해주세요. 사실, 바보가 되는 느낌에 대해서는 조금 슬펐지만, 크게 감흥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모이고 모여, 일상을 넘어선 사회 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니 덜컥 겁이 나더랍니다. 최근에는 두려움 탓인지 주위 시선을 너무 의식하게 되어서… 제 존재의 증명을, 제 가치에 대한 증명을 매시간 매초 해내는 기분이 들어요. 숨막히고 어려운 일이죠... 이 어둠이, 그믐달이 하루빨리 지났으면 해요.

언제나 제 힘이 되어주시는 상냥한 저의 우주. 부디 끊임없는 응원과 격려를 주세요. 그리고 제가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세요.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건, 나 역시 다를 바 없을 테지. 

 

 이 편지에 내 담아 보내는 말은, 언젠가 그대에게 들려준 적이 있는 말이니. 또한, 그대를 향한 나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으니, 편지의 내용 역시 새롭다고만 할 수 없겠지. 반복은 그대의 일만이 아닌 듯 하구나. 그러니, 괘념치 말라 먼저 일러두마. 

 

 영원의 시간에서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느냐. 영원이라는 감각조차 희미해져 그저 멈춘 줄 알았던 시간이었는데, 이리 들으니 감회가 새롭구나. 어찌 되었든, 그대가 일깨워준 그 ‘영원의 시간’에서, 나는 그 ‘시간’을 느끼고자 주변을 둘러보곤 하였다. 이 몸은 세상에 뿌리내리되 세상에서 벗어났지. 그러나 이 몸을 둘러싼 것들은 그렇지 아니하니 말이다. 그대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대를 둘러싼 세상이 어떻게 생동하는지 느끼는 것. 그것이 곧 내가 생동함을 느끼는 순간이기에, 그대의 물음에 대해선 생동하였다고 답하고 싶구나. 

 

 그래, 그렇게 생동하여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붉은 장미를 선물하고, 축하하는 마음을 담아 한 다발로 색색의 꽃을 선물하던 이들을 보았으므로. 봄의 절정을 맞아 사람들은 오늘을 장미를 선물하는 날로 새겨둔 듯하더구나. 그리하여 떠올릴 수 있었지. 언젠가 그대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 말이다. 사람들은 장미의 색마다 그만의 의미를 불어넣었다고. 그러니, 그대는 그대만의 색을, 의미를 품으라 일렀었지. 그 말은, 지금의 그대에게도 여전히 전하고 싶구나. 

 

 또한, 그대를 이룰 수많은 색 중의 하나로 이 몸은 ‘푸른색’을 말해볼까 한다. 혹자는 푸른색을 우울의 상징이라고 말하기도 하더구나. 허나, 꽃을 사랑하는 그대는 알고 있을 테지. 푸른 장미의 꽃말은 ‘기적’이라는 것을. 푸른색을 띨 수 없어 ‘불가능’이라 명명하였던 그것이 시간이라는 물을 얻고 땅이 아닌 사람들의 손에 의해 피어나면서 사람들은 그것의 꽃말을 ‘기적’이라 덧붙였다지. 우울을 꽃잎에 띄우게 되었음에도, 사람들은 티 없이 맑은 희망찬 단어를 덧발랐더구나. 이에 나는 그대를 생각하였다.

 

 누군가에게는, 그리고 어느 시간의 그대 스스로는 그대를 우울하다고 말할지라도, 그대가 띤 색은 감히 그것으로만은 이름할 수 없다. 그대의 색은 다시 없을 기적만큼이나 특별하고 고귀하지. 또한, 장미의 푸른색은 인간의 손으로 직접 빚어내었듯, 그대의 색과 기적은 그대가 빚어내었고 또 빚어낼 것이다. 이미 그대의 존재는 내게 기적과 같으니, 그대는 그 기적을 만들어낼 능력이 충분해. 작은 빛이여, 그대의 안에 숨 쉬는 푸른 장미를 기억해주기를. 그대의 기적은, 그대의 우주는 언제나 가까이에 있어. 

 

 외로움을 필연으로 받아들인 그대여. 사랑은 때로 사랑하는 존재를 닮게 한다고 하지. 그리하여 외로움과 공허함을 필연으로 느낀다면, 그대의 외로움까지 나의 우주로 끌어안겠다. 닮는 사랑을 하는 그대에게, 어찌 외로워 말라 할 수 있겠는가.

 그대의 외로움을 내 완벽히 채울 수 없다면, 그대가 가지는 외로움의 감정을 끌어안겠다. 그러니 내가 사랑하는 그대를, 그대 역시 사랑해준다면 좋겠구나. 그대가 가진 외로움과 공허함, 때로 느끼는 두려움까지 전부 그대를 사랑하는 내가, 그리고 그대가 사랑하는 나의 사랑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리한다면, 숨이 멎는 시간을 조금 더 두려워하게 될까. 그대의 두려움을 바라진 않지만, 그대의 두려움이 사라지는 일은 곧 나의 두려움이 될 듯해. 나의 장미, 나의 별이 편안에 이르길 늘 바라고 있다. 그러나, 나의 바람에는 삶 자체에 동하며 하루를 기꺼워하는 그대가 있을 테지. 이 몸이 그대로 인해 삶에 그러한 의미를 불어넣었듯이. 

 

 그대가 두려움으로 증명하는 데에 생동을 느낀다면 나 역시 기뻐해야 할 일이겠으나... 그대로 인해 이 몸은 인간이 가지는 두려움마저 닮아버린 모양이지. 그대가 스스로 내몰아가며 생동하려 할까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그대가 살아있음을 느끼려 해준 것에 대해 고마움 역시 느끼고 있다. 나의 두려움으로 그대를 탓하는 일은 없길 바라며 덧붙여 두마. 그대만의 색을 찾길 바랐던 봄의 초입을 생각해보자면, 이는 그대에게 크나큰 발걸음이지. 나아가는 그대가 자랑스럽고, 그런 그대에게 ‘나의 작은 빛’을 내어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세상을 둘러보고자 하는 그대의 마음에 찬사를 보낸다. 또한, 나의 작은 빛을 더욱 틔워줌에 감사를 표하지. 언젠가는, 어쩌면 머지않아, 그대를 감히 ‘작은 빛’이란 말에 담을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리고 그 생각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성싶다. 그대의 지난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또 한 가지가 있다면, 그대와 나누었던 편지를 다시 차근히 살피었단 점이겠지. 그리고 거기에서, 나는 또 한 번 그대가 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오직 글로 접하는 그대의 삶이 이러한데, 그대의 곁에서 그대의 숨과 걸음을 지켜보는 이들은 어떠하겠느냐. 그들 역시 분명 느낄 것이다. 만일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은 그저 무엇이든 보고 싶은 대로 판단할 이들이거 나, 저 외엔 달리 신경을 쓰고자 하지 않는 이들일 터이니, 그들의 시선에 너무 얽매이지 않아도 좋을것이다. 본연의 색과 빛을 찾아가는 그대이거늘, 그런 이유로 그대의 만개가 늦추어지길 바라지 않아 이리 적어본다. 

 

 그대의 우주가 된 덕에, 세상에 뿌려진 향기를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영원의 시간을 어찌 보냈냐는 물음에 대한 내 마지막 답은 이것이다. 그리하여, 고맙다는 말을 또 한 번 전하는 것. 나는 그대의 우주임과 동시에 우주를 부유하는 무언가에 불과하지. 그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우주를 떠도는 작은 것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그러니 작은 빛이여, 그대가 품은 두려움 역시 아주 작은, 그대가 이겨낼 수 있는 작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해주길. 이미, 그대가 바라던 대로 달은 차오르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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