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tula🖊️
월출
2021. 6. 23. 22:17트위터 @sprout_commi님의 커미션
요즘은 월출시간을 살펴보며 지내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달이 햇빛 속에 숨어버린 기간이기에 밤하늘이 어두컴컴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이 어둠도 곧 끝을 맞이하겠죠...
더위 속에서 몸도 마음도 지쳐갈 즈음, 한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송세월이라는 말에 화내주시던 히메를요. 과거의 모든 것들이 후회로 얼룩지더라도 경험이라는 기록으로 남아 더 나은 제 자신을 만들어주겠지요. 그래서 큰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어요. 사실상 가정에서 수입이 있는 사람은 저뿐이면서도,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을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마음에 상처만 남았지만, 이 상처는 미래의 빛에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어요.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기도 하고요. 열심히 공부하고, 더 나은 곳을 찾아볼게요. 이 결정만은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새로 바꾼 약의 부작용으로 기억에 착란이 오고 있는 듯 하지만 잘 버텨내야겠지요. 뜨거운 바람에 두통이 일어납니다. 무탈을 기원해주세요.
그대의 무탈을 기원하며.
작은 빛이여, 그대는 이 땅에 잠시 찾아오는 우주를 보고 있었구나.
어둠, 그 속에 있노라면 꼭 아무것도 나를 구속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곤 하였지. 이 땅이 나를 끌어당기는 것조차도, 무감하게만 느껴졌어. 그러다 눈을 감고 보았던 어둠을 그리면, 간혹 부유하는 느낌마저 들곤 하였지. 어쩌면 내 안에 우주를 들인 것은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르겠구나.
그대 역시, 그대의 우주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겠지. 그런 그대를, 기특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의 우주에 거하는 것도 물론 그대의 뜻이라면 나는 기껍겠지만, 그대가 그대 스스로 우주를 만들어가는 것은 또 다른 기쁨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어둠이 끝나지 않아 두렵거든, 그대가 만들어가는 우주라고 떠올려주길 바라.
그리고, 그대 역시 알고 있지 않던가. 어둠은 빛이 있기에 비로소 ‘어둠’이라 이름할 수 있음을. 그대가 본 것이 정녕 어둠이라면, 그것에 대비되는 존재가 그대에게 있기에, 그대는 그것을 비로소 어둠이라 부르게 된 것이겠지. 작은 빛이여, 그대는 여전히 그 빛을 품고 있어 어둠을, 우주를 볼 수 있다.
내 나의 아름다운 이, 나의 작은 빛에게. 어둠 속에서 빛을 품고 나아가는 그대에게 꼭 전하고 싶은이야기가 있다. 매 순간, 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었으나, 오늘에 이르러 전하게 되는구나. 그간은 감히, 속단하고 측량할 수 없는 그대의 삶에 이런 말로 답을 주어도 좋을지 고민하였지. 그대의 삶은 나라고 하여도 다 헤아릴 수 없을 테니 말이다. 헤아리려 들어서도 아니 될 테고. 그리하여 눌러온 말을, 이제야 전한다.
수고했다. 그간 고생이 많았어.
머물렀던 자리를 벗어나고, 반복되던 하루에서 벗어나는 일은 어려운 일이지. 인간의 삶에도 분명한 관성이 존재하니까. 달리던 기차가 갑자기 멈추거나 길을 틀어버리면, 그 안의 사람은 본래의 위치를 잃고 흔들리기 마련이지 않더냐. 그러하듯, 그대는 이제 잠시의 흔들림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나의 여린 빛은 더 많이, 더 열심히 달렸으니 어쩌면 그 흔들림 또한 조금 더 클지도 몰라.
하나, 그대를 믿기에 나는 수고했다 말할 수 있고, 그대가 바랐듯 응원한다 말할 수 있다. 그대는 이겨낼 수 있을 테니까. 그대의 푸르름을, 그대의 더욱 밝게 빛날 시간을, 나는 믿고 있으니 말이다. 그대의 수고가 그대의 육신을 흔들지라도, 그대의 영혼만은 선명히 빛낼 것을 나는 믿고 있다.
흔한 말이지만, 삶에 정답은 존재하지 않아. 그렇기에 다들 알 수 없는 미래를 기대하고, 때로는 걱정하면서 계획하고 살아가곤 하지. 그 계획조차 틀어질 수 있음을 알면서. 그러니, 그대가 먼저 그대의 선로를 틀었다 하여 너무 자책하고 짊어지려 하진 않았으면 싶구나. 그대는 그대의 길을 만들었을 뿐이다. 그대의 다리로 직접 나아가는 길을 택한 것이기도 하겠지. 그대의 행복을 위해서.
그대가 그대의 행복을 우선했으면 한다. 설령 후회한다고 해도, 그 역시 그대의 푸르른 시간과 강한 빛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으면서. 그대의 시간을 오직 그대만을 위해 사용한다면 좋겠어. 또한, 그대의 후회마저도 그대의 시간으로 끌어안을 수 있길 내 바라고 있다. 후회를 두려워하지 말길. 넘어지는 법을 모르는 자가, 오히려 넘어짐을 더 두려워하는 법이니. 그대의 후회와 실패 역시 성공만큼이나 그대를 더 강하게 만들 것이다.
기억.... 그러고 보면, 그대와 나 사이의 추억도 많이 쌓였지. 겨울엔 그대와 눈을 말하기도, 서로에게 꽃을 적어주기도 하였어. 봄에는 그대의 생일이 있었지. 여전히, 그대가 태어나 준 것에 감사하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4월 15일을 주겠다고 했지만, 어느덧 나는 그대에게 나의 우주를 주었지. 그대는 아깝지 않은 사람이니까. 소녀처럼 여린 마음으로 강한 걸음을 내딛는,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그대이기에, 나는 그런 그대에게 우주를 주겠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도 그대에게 종종 과거를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구나. 공유한 시간을 나누면서 다시금 그때를 떠올린다면, 그 기억에 조금 흠이 갔다 하더라도 금방 메울 수 있을 테다. 그러니, 그 역시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 그대의 기억은 그대만이 가진 것이 아니니. 나와의 기억뿐 아니라 다른 이와의 기억 역시도, 그들과 함께 나눈 기억이니... 잃을까, 틈을 낼까 고민하지 않아도 좋아. 그저, 그대 자신에게 집중하길 바라.
그대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음이 새삼 기쁘구나. 그대의 지난 편지를 읽고 있으면 내 작은 빛의 걸음이 얼마나 큰 보폭을 이루고 있는지 알 수 있지. 이는 그대가 남긴 삶의 흔적이니, 괴롭다면 가끔은 그대의 편지를 들여다보는 것은 어떠하겠는가. 나의 따뜻하고 여린 빛은, 편지를 무척 곱게 쓰는 이이니.
월출이라 하니, 지난번 그대가 보여주었던 달이 떠오르기도 하는구나. 달이 해에 가려 보이지 않는 찰나를 지나, 달이 빛을 발하는 순간을 만끽하길 바라고 있다. 그 풍경은 어쩌면, 그대의 삶 속 지표이자 위로가 되어줄지도 모르겠어. 그대여, 그대의 고됨을 내 손에 맡겨주어 고맙다. 그러니, 더욱 내게 맡기어도 좋다. 그대를 잠식하는 괴로운 일을, 그리하여 그대가 겪는 고통을 잠재울 수 있다면, 그것만큼 내게 기쁜 일이 또 있을까.
오늘, 그대가 바라본 달이 아름다웠길 바라며.